[뮤지컬 리뷰] 스타가 된 나쁜 여자들…원조 시카고의 귀환

입력 2023-06-12 18:36   수정 2023-06-13 00:41


“Come on babe, why don’t we paint the town? And all that jazz! (이리와 자기, 한번 신나게 즐겨볼까? 그게 재즈지!)”

막이 오르고 넘버 ‘올 댓 재즈(All That Jazz)’가 흘러나오자 극장은 순식간에 끈적한 재즈클럽으로 변신한다.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농염한 의상에 관능적인 안무가 더해져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블랙코미디, 뮤지컬 ‘시카고’가 돌아왔다.

최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개막한 뮤지컬 시카고는 1996년부터 27년째 미국 브로드웨이를 지키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한마디로 검증된 작품이라는 얘기다. 2002년 영화로 제작돼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이번 서울 공연은 브로드웨이에서 활약하는 배우들이 책임진다. 이들이 한국을 찾은 건 2017년 후 6년 만이다.

이 끈적한 뮤지컬은 시카고 트리뷴지의 기자이자 희곡작가였던 모린 달라스 왓킨스가 실화에서 영감을 받아 쓴 연극을 원작으로 한다. 1920년대 부패와 욕망으로 얼룩졌던 미국 사회를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다.

바람피운 남편과 여동생을 죽인 벨마 켈리와 내연남을 살해한 록시 하트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언론과 여론을 조작하는 데 능수능란한 변호사 빌리 플린의 도움을 받아 오히려 세간의 관심과 동정을 받는 유명 스타가 된다.

의상, 음악, 춤, 세트, 조명 등 192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보드빌(통속적인 노래와 춤 등으로 구성된 오락 쇼) 공연을 그대로 재연했다. 무대는 그 당시 재즈클럽처럼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게 꾸몄다. 통상 대형 뮤지컬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무대 장치나 연출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배우들이 가창력을 뽐내는 고음 가득한 넘버도 없다. 농밀한 재즈 음악과 그에 맞는 농염한 안무가 있을 뿐이다.

꽥꽥 소리 지르지 않아도 충분히 멋진 명품 넘버들이 브로드웨이의 전설적인 안무가 밥 포시의 안무와 어우러진다. 오랫동안 관객의 사랑을 받은 뮤지컬인만큼 익숙한 넘버가 많다. 이번 공연은 ‘올 댓 재즈’를 비롯해 ‘웬 유아 굿 투 마마(When You’re Good to Mama)’ ‘올 아이 케어 어바웃(All I Care About)’ ‘록시(Roxie)’ 등을 원래 가사 그대로 듣는 맛이 있다.

포시의 관능적인 안무는 시카고를 시카고로 만든 핵심 요소 중 하나다. 포시는 ‘안짱다리’라는 콤플렉스를 오히려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승화한 춤꾼이다. 발을 바깥쪽으로 돌리는 데 어려움을 느꼈던 그는 어쩌면 약점일 수 있는 이 포인트를 춤에 적용해 구부정하면서도 작은 근육의 움직임을 이용해 섹시한 안무를 창조했다. 농염한 시카고 특유의 안무는 재즈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다. 후반부 넘버 ‘핫 허니 래그(Hot Honey Rag)’에서 보여주는 벨마와 록시의 호흡도 인상적이다.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록시다. 그를 연기한 배우 케이티 프리덴은 노래와 춤 실력은 물론 익살스러운 표정 연기가 일품인 재주꾼이다. 살인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커녕 무죄를 받기 위해 임신한 척하는 못된 록시를, 미워할 수 없는 백치미 캐릭터로 잘 표현해냈다.

그래서 시카고의 최고 명당 자리는 맨 앞자리다. 배우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볼 수 있으니까. 프리덴은 기자간담회에서 표정 연기의 노하우를 묻자 “실제 성격이 좀 장난스러운 면이 있는데 그 점이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무대 한가운데서 라이브 연주를 하는 14인조 빅밴드(재즈밴드)는 ‘제2의 주연배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큰 역할을 해낸다. 지휘자가 극 중간에 배우들과 익살스러운 대사를 주고받는 걸 듣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이 전부 퇴장했는데도 빅밴드의 재즈 연주가 이어지자 자리에 남아 음악을 즐기는 관객도 여럿 보였다.

영어 공연이어서 자막을 읽는 게 불편하지만 작품의 완성도와 재미를 감안하면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 공연은 오는 8월 6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열린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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